특별한 선물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자 트리 아래 아이들 선물을 준비한다.아이들이 평소 갖고 싶던 것, 가격이 부담되고 보통 들 수 없다 선물도 이때만은 마음껏 준비를 한다.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서 포장했던 선물을 즐겁게 풀어 보라고 하면 아이들 못지않게 내 마음도 커지는 기대된다.평소 갖지 못하는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되므로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기쁘고 좋은 것이 당연하다.그러나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가끔 짙은 감동을 주는 비싼 선물을 사서 주는 것보다 조금도 감동을 주지 않는 아이들의 일상적인 필요를 준비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유지하는데 더 많은 돈과 시간, 노력과 희생이 요구된다.매일 먹는 밥, 매일 편히 잔다 집, 계절에 따른 입는 옷, 곧 헤어질 운동화, 학원비, 병원비 등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일상적인 것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 적지 않은 부담이다.언젠가 누군가가 이 비용을 돈으로 환산한 통계를 봤는데 만 18세까지, 즉 자신의 용처를 담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가 되도록 부모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그 금액은 내가 모든 특별한 날에 어김없이 아이들에게 큰 감동을 줄 선물을 주었다고 해도 비교가 안 될 만큼 큰 액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은 이처럼 공교롭게도 한번 받게 된다 특별한 선물이다.음식, 입을 것, 자는 곳, 이 모두가 가끔 받는 선물 하나도 안 된다.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자식 입장에서는 이런 일상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부모가 있는데 아이가 오늘 먹는 끼니를 걱정할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고 오늘밤 자는 장소가 없어서 불안하게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모로서 미안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듯한 안타까운 것 아닌가.그래서 아이는 이런 일상의 필요는 부모님께 맡기고 밝은 매일 기쁘게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그래서 자식 입장에서는 이렇게 가끔 받는 선물이 더 특별하고 생각해낼 수밖에 없다.그런데 이런 모습은 저와 제 아이뿐 아니라 내와 하나님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보인다.가끔 내가 지금 누린 일상을 특별한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보다는 남에게는 있는데 내겐 없음을 아쉬워하다가 하나님의 아버지에게 나도 특별한 선물을 달라고 애원할 때가 있다.그리고 그것을 받게 되면 비로소 신의 특별한 은혜에 감사하면서 증언한다.그러나 만약 내가 살아가는 이 일상이 무너지면 특별한 선물을 얼마나 많이 받고도 아무 소용도 없다.그러니까 저도 또 하나님의 아빠가 오늘 나에게 일용 할 양식을 주신 것과 내 일상을 가능하게 하고 준 데 무엇보다 감사해야 한다.이처럼 공교롭게도 아이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기 쉽고, 조금도 특별하지 못한 평범한 일상을 준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또 특별한 선물은 아이 때문에 줄 수 없을 때보다 사다 안 줄 때가 많았다.그러나 일상의 필요한 것은 혹시 준비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돼서 잠 못 자는 밤도 있고 자존심을 버려야 하기도 했다 새벽에 예배당에서 눈물로 빌기도 했다.부모로서, 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준비하는 일만큼 치열하고 힘든 것은 없었다.그래서 아이들이 알아서 주는지, 아버지인 나로서 아이들에 줄 수 있는 것 속에서 그들의 일상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소중한 선물은 없다.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버지가 저에게 내준 어떤 선물보다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평소보다 더 소중하고 특별한 선물은 없다.또 이 땅에서의 삶뿐 아니라 그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영원한 평소보다 소중한 선물은 없다.이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물려준.크리스천·헤럴드”생각하며 기원하며”조·영석 칼럼.https://cheraldus.com/bbs/board.php?bo_table=opinion&wr_id=172https://online.fliphtml5.com/cmwlf/bumk/#p=1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트리 아래 놓을 아이들 선물을 준비한다. 아이들이 평소 갖고 싶었던 것, 가격이 부담스러워 평소에 주지 못하는 선물도 이때만큼은 과감히 준비를 한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 포장해 놓은 선물들을 재미있게 풀어보자니 아이들 못지않게 내 마음도 부풀어 기대된다. 평소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되므로 아이들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좋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비싼 선물을 사주는 것보다 조금도 감동을 주지 않는 아이들의 일상적인 필요를 마련하기가 훨씬 어렵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돈과 시간, 노력과 희생이 요구된다. 매일 먹는 밥, 매일 편하게 잘 수 있는 집, 계절에 따라 입을 옷, 금방 헤어지는 운동화, 학원비, 병원비 등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일상적인 것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 적지 않은 부담이다.언젠가 누군가가 이 비용을 돈으로 환산한 통계를 봤지만 만 18세까지, 즉 자신의 쓰임새를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가 될 때까지 부모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금액은 내가 모든 특별한 날에 빠짐없이 아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선물을 주었다고 해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그럼에도 아이들이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은 이처럼 우연히도 한 번 받게 되는 특별한 선물이다. 음식, 입을 것, 잘 곳, 이 모든 것이 가끔 받는 선물 하나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아이 입장에서는 이런 일상의 필요가 충족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부모가 있는데 아이가 오늘 먹을 끼니를 걱정하고 무엇을 입을지 걱정하고 오늘 밤 잘 자리가 없어 불안해한다면 그야말로 부모로서 죄송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그러니 아이는 이런 일상의 필요는 부모님께 맡기고 밝고 하루하루를 기쁘게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아이 입장에서는 이렇게 가끔 받는 선물이 더 특별하고 생각날 수밖에 없다.그런데 이런 모습은 나와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나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가끔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을 특별한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보다는 남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나도 특별한 선물을 달라고 간청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받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에 감사하며 증언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살아가는 이 일상이 무너져버린다면 특별한 선물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나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과 나의 일상을 가능하게 해주신 것에 무엇보다 감사해야 한다.이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에게 특별한 선물을 마련하기는 쉽고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마련하기는 매우 어렵다. 또 특별한 선물은 아이들을 위해 사주지 못할 때보다 사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일상의 필요한 것들은 혹시나 준비하지 못할까봐 잠을 이루지 못한 밤도 있었고 자존감을 버려야 했던 적도 있었고 새벽 예배당에서 눈물로 기도하기도 했다. 부모로서 나에게는 아이들의 일상을 준비하는 것만큼 치열하고 힘든 일이 없었다.그래서 아이들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아빠인 나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중 그들의 일상을 마련해 주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소중한 선물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내게 허락하신 그 어떤 선물보다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일상보다 더 귀하고 특별한 선물은 없는 것이다.또한 이 땅에서의 일상뿐만 아니라 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영원한 일상보다 소중한 선물은 없다. 이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물려주셨다. 크리스천 헤럴드 ‘생각하며 기도하며’ 조영석 칼럼. https://cheraldus.com/bbs/board.php?bo_table=opinion&wr_id=172https://online.fliphtml5.com/cmwlf/bumk/#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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